양심적 집총거부자로 최고 명예훈장까지 받은 용감한 전쟁영웅 4인

다음 주면 국내에서 개봉할 멜 깁슨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핵소 고지' 덕분에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끔씩 이슈가 되고 있는 종교적인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양심적 집총거부'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은 살인이나 총을 들지는 않을지언정 거부자들과 달리 병역의 의무는 이행하고 있죠. 실제로 양심적 집총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로, 병역에 교체로 보낼 사람을 찾지 못하면 300달러의 벌금을 냈습니다. 그리고 1,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전투보직이 아닌 군관련 임무를 맡을 수 있었죠. 하지만 이마저도 거부하는 사람들은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대중들은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을 겁쟁이 또는 핑계를 만들어 병역을 회피하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은 실제 양심적 집총거부자로 최고 명예훈장까지 받은 용기있는 전쟁영웅 4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데스몬드 도스 상병

실화를 바탕으로 한 화제작 '핵소 고지'의 실제 주인공이죠. 데스몬드 도스(Desmond Doss)는 제7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로서 2차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의무병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다라 토요일에는 훈련도 참가하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았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살인에 사용되는 총을 아예 들지 않았죠. 1945년 5월 5일, 미 육군 제77보병사단 제307보병연대 1대대 소속으로 태평양 전쟁의 오키나와 마에다 절벽 점령 전투에 참가한 도스 상병은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부상까지 입어가며 부대원 200명 중 75명의 생명을 구해냈습니다. 그는 같은 해 10월 12일, 양심적 집총거부자로서는 최초로 최고 명예훈장인 메달오브아너 (Medal of Honor)를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받게 되죠. 도스 상병은 전역 후 조지아 주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다가 2006년 3월 23일, 88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2.  토마스 베넷 상병

토마스 베넷 (Thomas W. Bennett)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 격렬해지기 시작한 1967년 가을,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다니는 풋풋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칼뱅주의를 따르던 남부침례회 소속으로 살인과 총 사용을 거부했지만, 나라를 위해 생명을 구하고자 1968년 의무병으로 지원했죠. 그리고 1969년, 그는 베트남 남부지방으로 보내졌고 단 한달만에 그의 용기를 알아본 미군은 실버스타 훈장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훈장을 받은 지 이틀 째, 매복당한 아군을 지원하러 나서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15명의 동료들을 구해내다가 베넷 상병은 적의 스나이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말았죠. 당시 그는 20세였습니다. 베넷 상병이 죽고 1년 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넷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러 최고 명예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베넷 상병은 도스 상병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양심적 집총거부자로서 메달오브아너를 받게 되었죠.

3.  조셉 라포인트 주니어  상병

조셉 라포인트는 미국 오하이오 주 출신으로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스무살에 결혼했고 우체국 배달원으로 일하는 독실한 침례교인이었는데, 1968년에 베트남전으로 징집되었죠. 역시 위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양심적 집총거부자를 선언한 그는 제101대 공수사단에 의무병으로 배치되었고 단 1년 만에 베트남에서 그의 공이 인정되어 브론즈스타와 실버스타 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동료 2명에게 의무조치를 취하다가 적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으면서 함께 폭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그의 용맹한 업적이 알려지면서 최고 명예훈장을 받게 되었죠.


보너스.  알빈 요크 상사

개리 쿠퍼가 출연한 1941년 영화 '요크 상사'의 실제 주인공, 알빈 요크는 독실한 기독교 출신으로 양심적 집총거부자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는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미 육군 징집대상자로 입대했고 곧바로 격전지인 프랑스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위 3명의 의무병들과는 다르게 집총거부에 대한 심경의 변화를 맞은 요크 상사는 신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고 국가를 위해서 싸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혼자서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무력화시키고 24명을 사살하였으며 무려 132명을 사로잡는 유례없는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1919년 2월 7일,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약 3개월 후, 요크 상사는 최고 명예훈장을 수여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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