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으로 나치와 싸워 퍼플하트 훈장까지 받은 히틀러의 조카

1944년 2차세계대전이 한창 격렬하게 진행되던 당시, 미 해군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지원하는 젊은이들의 이름 중에서 '히틀러' (Hitler)를 발견하고 경악을 했습니다. 바로 이 세계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자 독일 나치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William Patrick Hitler)라는 청년이 실제로 우리가 아는 그 히틀러의 친조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친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가족과 조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루게 되었죠. 다음은 미 해군으로 나치와 싸워 퍼플하트 훈장까지 받은 히틀러의 조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11년,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 (Alois Hitler Jr.)로 아돌프 히틀러보다 7살 많은 형이었습니다.


▼1929년, 윌리엄이 18세가 되던 해에 조국인 독일을 처음 방문했고 실제로 삼촌인 아돌프 히틀러를 만나 여러 나치 전당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유명한(?) 이름 덕분에 직업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 삼촌에게 매달려 베를린 은행을 거쳐 오펠(Opel) 자동차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사실, 윌리엄의 존재는 히틀러에게 큰 걸림돌이었죠. 윌리엄은 삼촌을 상대로 순수 게르만족 혈통이 아니라 유대인피가 섞였다는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도 하고 공개적으로 히틀러의 사상과 행보를 비난했습니다. 


▼결국 조카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유인하기 위해 히틀러는 윌리엄에게 나치당의 고위간부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낀 윌리엄은 1939년, 강연을 핑계로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죠.

▼2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윌리엄은 미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하지만 히틀러의 친조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직접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호소 편지를 써서 겨우 입대하게 되죠.


▼1944년에 입대한 윌리엄은 유럽전선에 의무병으로 투입되어 전투중 부상을 입고 퍼플하트 (Purple Heart) 훈장과 2차세계대전 빅토리 메달 (WWII Victory Medal)까지 수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1947년에 전역을 했죠.


▼군 생활을 마친 그는 히틀러라는 성을 버리고 이름을 '윌리엄 스튜어트-휴스턴' (William Stuart Houston)으로 개명해 1987년까지 뉴욕에서 조용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4명의 자녀들에게 히틀러의 대를 끊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아이를 낳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망했죠. 


▼실제로 지난 1989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FBI 출신 장남 하워드와 지금도 뉴욕주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는 차남 알렉산더를 포함해 4명의 아들들은 자녀가 단 한명도 없다고 합니다. 


▼이 흥미로운 실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5년, '서프라이즈'를 통해 방송되어 큰 화제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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