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검 TOP3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검으로 보검이나 명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뛰어난 재질과 내구도 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더라도 그 존재와 의미만으로도 가치가 높다 평가받는 검이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개의 명검에 대해 알아보자. 

1.사인검

▼사인검은 조선시대 임금에 지시로 제작된 칼로 전투적인 목적을 위한 칼이 아닌 주술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칼이다. 사인검, 또는 사인참사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사람을 베는 검이 아닌 사귀를 베고 재앙을 물리치는 기능으로 제작된 칼이다.


▼사인검의 이름중 사인이란 12지간(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중 호랑이를 뜻하며 12이 지간에 인이 4번 겹치는 때인 인년, 인월, 인일, 인시를 택해 제작되었다. 이는 호랑이의 위력을 빌려 사귀를 물리쳐 왕실과 궁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인검은 권위를 나타내는 의장용이나 왕의 칼, 호신용 칼로 활용된 적은 없다 다만 공신과 신하들에게 하사용으로 사용되기도, 국가적으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다다르며 그 크기가 점차 커져 호신용으로 사용 할 정도가 되었다 전해지나 실제 전투에 사용된 적은 없다.


▼사인검은 단조로 쇠를 두드려 만든 칼이었고 그 이유는 표면이 경화되는 것을 막아 검날에 글씨를 새기기 위해서 였으며 이 작업은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사주팔자가 양의 기운으로만 이루어진 순양에 시점에 쇠를 두드려 그 기운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사인검에 몸통에는 별자리 문양, 주문이 새겨져 있는데 대표적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하는 28수 별자리와 검의 명칭을 포함한 총 29자의 한자를 전서체로 입사해 주문으로 세겨 넣은게 특징이다.


2. 칠지도 

▼고대 한일관계에 대한 뜨거운 쟁점에 올라있는 칠지도는 독도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사왜곡 문제와 일맥상통한 쟁점에 있는 유물이다. 현재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이소노카미 궁에 보관되어 있으며 1953년 일본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소노카미신궁은 전설적인 칼을 모시는 신궁으로 새해 첫 모종을 심는 의식중 사용된 검이라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이 칠지도에 새겨진 문구인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에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라는 문구를 근거 삼아 일본 신공황후 시절 한반도 남부정벌설을 기정 사실화 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제후국의 왕을 언급하고 왜왕의 이름인 지를 언급했으며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라는 문구가 있는 점 등을 볼때 당시 백제왕이 하사했다는 설이 타당하다 평가받는다


▼그 이유로는 칠지도가 제작된 시기가 태화 4년으로 이 시기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군은 평양성까지 진격해 고구려왕을 패사 시킬 정도로 국력이 강력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금관 문화 금상감 기법으로 황금 문자 62자를 수놓은 상당히 고급 기술이 들어간 검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보검이 많은 수 발굴 되었기에 당시 백제왕이 일본에 왕에게 하사했다는 설이 타당하다 추정된다.


3. 이순신의 쌍룡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외날을 가진 단병기, 즉 환도로 실전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도 라는 뜻은 고리 환 자를 사용해 패용시 띠돈을 걸 수 있게 칼집에 고리가 있는 검이라 말하며 고려 충렬왕 시기부터 사용된 디자인이다.


▼쌍룡검은 1912년대 일제 치하 초기 이후로 100여년째 행방이 묘연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 가치가 상당히 높은 물건임 에도 두자루 모두 찾지 못했다.


▼현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거환도 2자루는 현충사에, 참도 2자루와 귀도 2자루는 충렬사에 소장되어 있으나 이 칼은 모두 의전용과 지휘용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검은 두자루의 쌍룡검이다.


▼쌍룡검은 1912년 5월 일본인들이 쌍룡검을 궁 내부 박물간에 전시하다 그 자리에 다른 문화재를 전시했다 라는게 마지막 행방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