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월북을 선택한 미군 탈영병 6인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부터 지금까지 수십만명의 미군들이 우리나라에 주둔해 왔습니다. 미군이 가장 많았던 1953년에는 무려 320,000여명이 있었고 현재는 약 28,000여명 수준으로 감소된 상태죠. 그런데 이들 중 실제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사례가 지난 67년간 딱 6번 있었죠. 여기에 공산당 문화를 공경해서 건너간 미군도 있었고 서양문화에 실망해 도망가고 싶었던 군인 그리고 단순히 실수로 월북한 미군도 있었습니다. 그럼 일반 민간인도 아닌 이 미군 병사들은 북한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았을까요? 다음은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월북을 선택한 미군 탈영병 6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래리 알렌 앱셔 일병 (1943~1983)

래리 알렌 앱셔 (Larry Allen Abshier)는 미군 역사상 가장 최초로 월북한 군인입니다. 그는 1962년 5월, 군사분계선 지대 초소를 이탈해 분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곧바로 DMZ를 넘어갔죠. 당시 앱셔 일병은 근무 도중 무기를 분실한 이유로 군사법정에 서게 될 처지였습니다. 월북한 앱셔는 북한의 온갖 선전용 홍보물과 미국정부를 비판하는 연극 등에 출연하며 북한정권을 찬양했습니다. 1978년, 북한정부는 납치한 태국 여성을 앱셔에게 붙여 결혼시켰죠. 하지만 1983년 7월, 앱셔는 40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2.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일병 (1941~ )

지금도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군 탈영병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James Joseph Dresnok)은 위조한 외출증으로 휴전선 근처에서 무단 외출을 했다가 큰 징계를 받게 될 위험에 처하자 월북을 결심했습니다. 1962년 8월 15일, 그는 동료들이 점심을 먹난 사이에 지뢰밭을 가로질러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드레스녹은 북한에서 결혼을 3번 했는데, 이 중 루마니에서 납치해 온 여성 사이에서 나은 두명의 아들 (아래 사진)은 평양외국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북한 외무성에서 일하고 있죠. 

3.  제리 웨인 파리쉬 병장 (1944~1996)

미국 켄터키주 출신인 제리 웨인 파리쉬 (Jerry Wayne Parish) 병장은 언제 그리고 왜 월북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미군 탈영병들인 앱셔와 드레스톡과 함께 합숙을 하면서 북한정부의 세뇌 교육을 받았다고 하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파리쉬 병장 역시 북한정부가 납치해 온 레바논 여성과 결혼해서 세명의 자녀까지 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 20년 동안 앓아온 신부전증으로 그는 사망했고 그의 처와 자식들은 아직도 평양에서 살고 있다고 하죠. 참고로 파리쉬 병장은 '김유일'이라는 북한 이름을 받아 사용해 왔습니다.


4.  찰스 로버트 젠킨스 하사 (1940~ )

1965년 1월 5일 새벽, 당시 24살의 젠킨스 하사는 분대장으로서 야간 순찰 중 맥주 10캔 정도를 마시고 월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부대가 월남전으로 보내질 것을 두려워 해, 북한으로 가면 자신을 러시아로 보내어 포로 교환으로 미국에 다시 보내질 것으로 알고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1965년 부터 2004년까지 40년간을 북한에 머물면서 김일성과 북한 스파이 요원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는 강사로 일하게 되었죠. 2004년, 일본인 아내를 뒀던 젠킨스는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김정일의 계획으로 인해 일본에 이사가서 지금까지 아내의 고향인 사도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일본 시민권을 신청한 상태죠. 


5.  로이 정 일병 (1957~????)

로이 정 (한국명 '정류섭')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간 재미교포 2세로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고자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1979년 6월 5일, 그는 독일에서 파병근무 중 근무지를 이탈했고 행방불명 30일째 공식 탈영병이 되었습니다. 로이 정은 당시 22세였죠. 그리고 두달 후, 그는 북한의 '평양 라디오'에 출연해 "미군의 만행을 이기지 못하고 이 천국같은 북한에 오게되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로이 정 일병에 대한 신상은 알려진바가 거의 없는 상태로 그가 실제로 월북한 것인지 아니면 납치된 것인지에 대한 팩트 체크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생사 여부도 아직 확인된 바가 없죠. 


6.  조셉 화이트 일병 (1961~1985)

가장 최근(?)에 월북한 미군인 조셉 화이트 (Joseph White) 일병은 1982년 8월 28일에 비무장지대 통문의 열쇄를 총으로 쏴 파괴시키고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그는 북한방송에 출연해 불안한 표정으로 미군의 타락과 부패 등에 대해 맹비난하게 되었죠. 1983년, 화이트 일병의 어머니는 북한정부로부터 그가 월북 후 영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그가 청천강에서 수영을 즐기다가 익사했다는 편지가 날아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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