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거장, 마블과 DC가 ‘파워’를 표현하는 방법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장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엄청난 힘을 가진 악의 세력이 등장하고, 이에 대적하는 영웅이 나타나서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두 힘의 충돌이라는 단순한 명제가 슈퍼히어로 장르를 있게 한 기본 바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본 명제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나면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고 나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악당이 등장해야 하고, 이에 대적하는 영웅의 파워 역시도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거듭할수록 끝도 없이 강해져야만 하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가 하나 있습니다. 단순한 무술경기로 시작해서 ‘초 슈퍼 울트라’ 사이어인까지 가야만 했던 끝없는 파워게임, 바로 드래곤볼입니다. 이렇게 슈퍼히어로 장르가 힘의 충돌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모든 슈퍼히어로는 결국 드래곤볼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요, 슈퍼히어로 장르의 양대 산맥인 마블과 DC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벤져스 1편에서 캡틴은 토니스타크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덩치 큰 슈트 선생, 수트를 벗으면넌 대체 뭐지?” 이 농담처럼 지나가는 질문이 슈퍼히어로 장르를 대하는 마블의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캡틴이 토니스타크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이언맨 3편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파워를 대변하는 토니스타크의 수트는 필요할 때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심지어 무참히 부서져버리기도 하죠. 수트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던 토니스타크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결국 자신의 모든 수트를 파괴하고 가슴의 아크리엑터까지 떼어내는 수술을 받게 됩니다. 



▼아이언맨 3편을 통해서 토니 스타크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진정한 아이언맨, 진정한 영웅은 그의 수트가 아니라 토니 스타크 바로 자신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던 능력과 파워가 사라졌을 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아이러니. 이렇게 마블의 영화에서는 영웅들의 능력이 충만해지는 순간만큼 그들의 능력이 사라지는 순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영웅들의 각성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마블이 그들의 영웅에게서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뺏어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비브라늄 방패로 대변되던 캡틴은 토니에게 방패를 넘겨줬고, 윈터솔져의 유일한 파워라 할 수 있는 강철팔도 잘려나갔습니다. 천둥의 신 보다는 망치의 신이 더 잘 어울리던 토르의 망치도 처참히 부서졌습니다.


힘의 증폭으로 강해지는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힘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내적인 성장. 마블에게 슈퍼히어로 장르는 더 이상 단순한 파워게임이 아니라 영웅들의 고뇌와 자각, 그리고 새로운 변화로 이어지는 내적인 성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블이 그들의 영웅에게서 성장의 이야기를 키워가는 동안, 반대편의 DC는 여전히 파워게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존재를 내세워서 지구를 초토화 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배트맨과 슈퍼맨 중에서 누가 더 센가 힘의 우열을 가리고, 신적인 존재까지 데려와서 파워게임의 끝판왕을 선보였습니다. 



▼DC의 악당들이 무서운 이유는 대부분 그들의 물리적인 파워에서 기인합니다. 더욱이 매번 그들을 물리치는 최후의 무기 역시도, 언제나 극대화된 물리적인 힘, 말 그대로 슈퍼파워의 몫입니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 한가지는 DC의 성향이 처음부터 파워중심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78년 오리지널 슈퍼맨 1편에서 슈퍼맨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갔던 적수는 엄청난 파워를 앞세우는 초우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번한 인간, 렉스루터였습니다. 렉스루터는 2개의 미사일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쏘아 올리고 슈퍼맨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 넣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 절망감에 빠진 슈퍼맨은 우주의 순리까지 거역하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죠. 슈퍼맨은 렉스루터의 힘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로라는 물리적인 힘이 통하지 않는 난제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DC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역시도 이러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트맨의 물리적인 힘은 조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조커가 조장하고 있는 공포와 혼돈은 단 1%도 그의 물리적인 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조커 같은 존재야야말로 슈퍼히어로에게 진정한 공포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걸 DC의 명작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DC 팬들이 염원하던 회심의 역작, 저스티스 리그가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흥행면에서는 마블에 버금가던 DC가 이번에는 흥행에서도 비참한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이 그저 힘만 센 악당이 등장하고, 그 악당을 저지하기 위해서 역시 힘만 센 영웅이 나타납니다. 힘으로 흥한 자, 힘으로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DC가 오리지널 슈퍼맨과 다크나이트의 가치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슈퍼히어로들을 떼거지로 몰고 온다 해도, DC의 미래는 점점 암울하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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