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신 이순신이 23전 23승을 이뤘던 특별한 비결

'23전 23승' 연전연승의 불패 신화를 이룬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비밀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일본군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다시 침략할 것을 염려했던 것이죠. 당시 이순신에게 연달아 패전한 일본은 이순신 장군을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19세기 중기에 간행된 일본 '조선정벌기'에 묘사된 이순신 장군의 삽화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죠. 삽화에서 이순신은 '악귀'처럼 무서운 얼굴로 묘사됐습니다. 실제 일본에는 악귀를 물리치는 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람들도 존재한다고 하죠. 그렇다면 왜군을 이처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순신 장군의 승리 전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역사 전문가 설민석이 말한, 영화 '명량'에서도 소개되지 않았던 장군의 위대한 전승 전략을 정리해봤습니다.

 전략 1.  전투함은 최대한 높게, 포는 최대한 많이

▼당시 조선과 왜군의 배를 보면 그들만의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왜군은 섬나라지만, 수군보다 육군이 월등히 강했는데요. 육지전에서는 감히 그들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일본은 최대한 빨리 노를 저어 적의 배에 올라타 육지전처럼 승부를 겨루는 전투 방식을 택했죠. 왜군이 전투선에 포를 달지 않고, 단순히 수송선의 역할만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 이순신은 왜군의 이러한 전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투선을 2층 높이로 올리고, 등껍질을 씌웠으며 그 위에 칼이나 못을 박았습니다. 왜군이 배에 기어 올라 침투할 것을 대비했던 것이죠. 전투선 곳곳에 360도로 포격이 가능한 포를 장착하기도 했습니다. 적들이 아예 자신의 전투선 가까이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죠.


 전략 2.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후 전쟁을 치른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승병선승이후구전'에 있습니다. 장군은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고 전쟁을 한다는 전략을 늘 잊지 않았죠. 즉, 적의 정보를 파악해 우리에게 유리한 지역인지 또 유리한 시기인지 등을 따져본 뒤 이길 수 있는 전투에만 나간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 영화 '명량')


▼이는 당시 선조가 왜군의 계략에 넘어가 이순신에게 부산에서 전투를 벌일 것을 명했으나 이순신이 이를 거부,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죠. 이순신은 부산 앞바다는 식수를 구하기도 어렵고 풍랑도 세서 전쟁에게 결국 패할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결국 부산 앞바다는 원균이 160척의 판옥선과 2척의 거북선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여견 속에서도 결국 처참하게 패하게 되죠. 이순신 말대로 갑작스럽게 풍랑이 불어 우리 군은 바다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하게 됩니다. 이때 배설 장군이 배 12척을 가지고 미리 도망가게 되죠. 후에 이순신이 아직 자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다고 말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전쟁은 임진왜란 가운데 유일하게 패배하는 해전으로 남게 되죠.


 전략 3.  한 명이 좁은 길을 막으면, 천 명도 막을 수 있다

▼선조의 무능함으로 결국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만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왜적은 300척 이상을 가지고 있었죠.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조는 그만 바다를 포기하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죠. 하지만 이순신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다를 포기하면 일본군의 보급이 원활해져 서울로 진격, 전쟁은 당연히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사진 출처 - 영화 '명량')


▼그래서 이순신이 택한 전략은 '필생즉사 필사즉생'(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이었습니다. 그는 죽을음을 각오하고 단 12척만 가지고, 전남 진도와 해남반도 사이의 좁은 해로인 '울돌목'으로 향했죠. 이곳은 본래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회오리가 자주 일어나는, 조류가 험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순신은 노를 저어 이동하는 왜군이 최단거리를 택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판단, 최단거리인 이곳을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 해전이 바로 그 유명한 '명량해전'입니다.


 전략 4.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치밀함

▼명량해전 당시 12척의 배는 '울돌목' 앞에 일렬로 대기해 왜군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왜군이 침입하자 이순신은 앞으로 나아갔죠. 하지만 11척의 배는 두려움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이순신 장군 혼자 밀물을 따라 들어오는 왜군을 연달아 격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밀물은 썰물로 바뀌었고, 결국 도와주러 오던 왜적과 반파된 왜적이 뒤섞여 바다는 난장판이 되고 말죠.


▼이에 감명받은 부하들이 이순신 곁에서 함께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160척의 왜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시간까지 계산했던 이순신의 치밀한 전략이 통했던 것이죠. 이순신은 12척의 배 뒤로 1천 석의 고기잡이 배를 띄워놓기도 했습니다. 왜군은 이를 전투선으로 오해해 결국 후퇴하기에 이르죠. 


 전략 5.  화끈한 후퇴

▼이후 이순신은 태안반도까지 빠르게 후퇴하게 됩니다. 왜군이 다시 울돌목을 침입해 이순신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행방은 알 수 없었죠. 왜군은 이순신이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사진 출처 - 영화 '명량')


▼명량해전은 겨울 초입에 치러졌습니다. 이순신은 겨울이 되면 바람이 세서 수군의 활동에 제약이 걸릴 것으로 판단, 겨울만 버티면 된다는 전략을 짜게 되죠. 결국 이순신을 찾던 왜적은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또 한번 후퇴하게 됩니다.


 전략 6.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절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는 당시 작전권을 가지고 있던 명나라 장수를 찾아가 울면서 싸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왜군을 이대로 보낸다면 업신여겨 또 다시 쳐들어 올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결국 이순신은 도망가는 왜군을 쫓아가 섬멸시킨 '노량해전'을 치르게 됩니다. 이번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에서 이순신은 결국 순국하고 말죠.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비밀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순신이었죠. 


▼이순신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바다를 지켜냈습니다. 일본군이 남해를 통해 서울로 진격하는 통로를 끊어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죠. 그의 뛰어난 전략은 결국 수백명의 목숨을 살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신의 위대한 리더십이 후대에도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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