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한민국 기업가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진그룹의 갑질 사건을 꼽으실 텐데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부정 청탁과 뇌물 수수, 아내인 이명희는 폭언, 첫째 딸 조현아는 땅콩 회항, 막내딸 조현민은 갑질을 일삼으며 그야말로 막장 가족임을 보여주었죠. 그 밖에 대표 대기업인 삼성바이오는 고의적 분식, 동아제약은 리베이트 등 웬만한 한국 기업들은 한 번씩 나쁜 소식으로 뉴스에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 기업들 사이에서 5년도 아니고 무려 15년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된 대기업이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이 기업은 어디이고 어떻게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유한양행
유한양행은 15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택된 제약회사입니다. 창업주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유일한 박사이죠. 유한양행의 대표 제품으로는 소염진통제인 '안티푸라민'이 있는데요. 1933년 이후 80년 동안 대한민국 대표 상비약으로 자리 잡은 '안티푸라민'은 2013년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2015년에는 13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도 살충제인 '해피홈', 동물 사료인 '웰니스', 각종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며 매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죠.
그렇다면 유한양행은 어떻게 15년간 존경받는 기업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배경에는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영향이 큰데요. 그는 어떻게 이렇게 청렴한 기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05년, 당시 재봉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아버지 유기연은 9살이었던 유일한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데요. 자식이 식견을 넓혀서 민족을 위해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죠. 유학을 간 유일한은 인종차별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하지만, 자신의 강한 성격으로 극복해냅니다.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시간이 지나고 유일한은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하는데요. 거기서 뛰어난 운동실력을 발휘하였고, 장학금을 받으며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을 하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1919년 3.1운동 직후에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주도로 열린 제1차 한인 의회에 참여하거나,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는 등 조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1919년 대학을 졸업하고 발전기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에 취직하지만 1922년에 사표를 내고 미국 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숙주나물 사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유일한은 숙주나물 사업을 위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순간 고온 열처리를 통한 통조림 보관법'을 개발하죠. 당시 유리병으로 보관하고 배달되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방식으로 통조림은 큰 사랑을 받는데요, 사업이 번창하자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합니다. 현재는 '콘아그라 푸드'의 주력 브랜드가 되어 여전히 미국 시장에서 사랑받고 있죠.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 박사는 라초이 회사 경영에 필요한 재료인 녹두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의 북간도에 갔다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겨우 숙주나물 장사나 하라고 미국에 보낸 것이 아니다. 큰 공부를 했으면 큰일을 하라'라는 말을 듣죠. 유일한은 빈곤과 기아,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민 끝에 회사를 매각하고 1926년 조국으로 귀국하여 지금의 종로 2가에 유한양행을 설립합니다. 귀국했을 때 서재필이 준 버드나무 로고는 현재까지도 유한양행의 CI(Corporate Identity)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전자신문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은 모든 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당시 대한민국의 의료환경을 보고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하는데요. 약품 개발에 주력한 유한양행은 자체 기술로 1933년, 국내 최초의 소염진통제인 '안티푸라민'을 만듭니다. 저렴한 가격에 소염 진통 작용, 혈관 확장 작용, 가려움증 등에 효과가 뛰어났고 보습효과도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며 '국민 만병통치약'이라는 애칭을 얻죠.
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평생을 정직하고 검소하게 살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러한 유일한의 모습은 유한양행의 경영철학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요. 이승만 대통령은 같이 정치를 하려고 유일한 박사에게 제의를 하였으나 거절당합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유일한을 깎아내리기 위해 세무조사를 했는데요. 그런데 아무리 조사해도 먼지 하나 안 나오자 당황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유일한의 은행 예금을 강제로 압수했다고 하죠.
박정희 대통령 때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 당시는 정경유착이 흔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는데요. 유일한은 당연히 정치자금 주는 것을 거절했죠. 화가 난 박정희 대통령은 국세청을 이용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무조사를 실시해도 탈세 내역은 없었고, 오히려 유한양행이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세금까지 자진해서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또한 약품 조사에서도 손실분이 발생할 것을 고려한 만큼 더 넣어 약품을 제조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죠. 이러한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맞는 상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며 1968년, 유한양행을 모범납세 법인으로 선정해 '동탑 산업 훈장'을 수여합니다.
출처 : SBS
이렇듯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경영할 때 윤리 경영을 실시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납부했는데요. 1936년에는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사원 주주제를 실시합니다. 유일한이 가지고 있던 유한양행 주식의 52%를 당시 회사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고 하는데요. 그뿐만이 아니라 은퇴하기 전 자신의 혈연과 친척들 전원을 회사에서 해고했습니다. 가족들 때문에 파벌이나 다툼이 일어나면 안 되며, 전문경영인이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이때 해고됐던 동생 유일선과 유특한이 유일한 박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데요. 그런데 이 소송은 퇴직금을 너무 많이 받아 회사에 전액 반환하기 위해 벌인 소송이어서 당시 판사가 경악했다고 하죠.
출처 : SBS
유일한 박사는 죽고 나서 손녀 유일링의 등록금을 제외한 407억 원 전부를 사회에 환원합니다. 이때가 짜장면이 60원, 쌀 40Kg이 2800원 정도 할 때였으니 현재 가치로 4조가 훨씬 넘어가는 금액을 환원했다고 할 수 있죠. 여담으로 손녀인 유일링은 등록금마저 반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했고 딸이었던 유재라에게는 땅을 상속해서 공원으로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그렇다면 유일한과 그의 가족들이 떠나고 누가 유한양행을 이끌었을까요? 유일한 박사는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계승함으로써 재벌 세습을 하지 않았는데요. 전문경영인을 외부 인사가 아니라 내부 인사의 승진을 원칙으로 했고 1회만 연임(최대 6년) 가능하게 만들었죠. 다시 말해서 유일한 박사 사망 이후 지금의 유한양행 이정희 대표에 이르기까지 전부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이 된 것입니다. 전임인 김윤섭 대표가 제약계 최초로 1조 원 매출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물러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출처 : SBS
대한항공의 갑질 사건이 터지고 나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가족 경영을 거부한 기업인의 예로서 유일한 박사의 자손들을 찾고 싶어 했는데요. 유한양행에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놀랍게도 유한양행의 그 누구도 연락처는커녕 지금 뭐 하는지도,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철학을 이어받은 유한양행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논란 없이 기업을 운영하며 15년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는데요. 이처럼 유한양행은 갑질, 분식회계, 사내정치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다른 대기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은 '오너 갑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금의 한국에서 남다른 교훈을 주는데요. 다른 기업들도 유한양행을 본보기로 삼아 깨끗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