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정리만 20년째, 죽지 않는 불멸의 토종 브랜드의 정체

JB CAFE_소울드레서

길을 지나다 보면 가끔 "폐업 정리, 오늘만 팔고 갑니다"이라는 현수막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물건을 잔뜩 가져다 놓고 인테리어 하나 없는 상태로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만 팔고 간다던 그 가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오늘만 팔고 간다며 오늘도 장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게 10년 동안 부도 정기전을 하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부도다 정리다 하면서 또 물건 가져오는 모습이 불사조와 같다 해서 피닉 쌈지로 불린다는 이 기업. 왜 이러는 걸까요?


1. 토종기업 쌈지


중앙시사매거진

쌈지의 시작은 천호균 대표의 1993년 설립한 '레더데코'입니다. 레더데코는 가죽 제품 제조업이었는데, 핸드백이 주력 제품이었죠. 아내의 추천을 받아 '쌈지' 핸드백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당시에는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업계가 외국말 표현에 지배되었던 시절이라 이름을 지워달라는 소비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외국말 브랜드 사이에서 한국말 브랜드로 눈에 띄려던 전략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2~3년 만에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죠.


하지만 천호균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말 '쌈지'가 외국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싸구려처럼 느껴졌다면, 'SSAMZIE'는 어떨까요? 그는 쌈지의 영어로 표기해 브랜드화했습니다. 동시에 당시 주류였던 딱딱하고 네모난 핸드백에서 벗어나 새로운 핸드백을 선보였습니다. 의류용 가죽으로 만들어 각지지 않고 부드러운 핸드백이었죠. 


2. 전성기


우리가 아는 '쌈지'가 되기 전, 레더데코는 1995년 이삭(ISSAC), 놈(NOM)과 같이 쌈지(SSAMZIE) 외의 서브 브랜드를 추가적으로 론칭했습니다. 어디선가 한번 봤던 딸기(DALKI)라는 캐릭터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탄생했죠. 1997년에 레더데코가 잡화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캐릭터를 활용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쌈지 스포츠를 추가하는 등 IMF가 무색하게 사세를 확장해 나갔죠.


오렌지노

레더데코는 핸드백 매장에서 선글라스, 장갑 등의 패션 제품을 함께 판매하고 예술을 활용한 '아트 마케팅'을 통해 예술과 경영을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팝 아티스트 낸시랭을 예술 이사로 영입해 '매직박스'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죠. 이 브랜드의 핸드백은 드라마 <궁>에서 윤은혜가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삶이 한편의 동화라면 - 티스토리

쌈지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레더데코는 회사의 이름을 아예 쌈지로 바꾸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쌈지가 되는 거죠. 천호균 대표는 멈추지 않고 사업 다각화를 이끌어나갑니다. 문화 사업부터 2004년 개장한 파주 "딸기가 좋아" 테마파크까지 말이죠. 


출사코리아

2004년 말에는 그의 야심작 쌈지길을 개관했습니다. 천호균 대표는 쌈지길을 건축하는 인사동 프로젝트에 대하여 "처음 '쌈지'를 시작할 때 직원들에게 '문화'를 상품에 담아 팔겠다고 약속했다."라며 "이번 '쌈지길'은 인사동 전통과 문화를 파는 약속 지키기 일환"이라며 개관 소감을 밝혔었죠. 이렇게 쌈지는 매출 2000억원 규모에 직원 1000명에 가까운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했습니다.


3, 지속적인 적자와 매각 


EBN

1990년 말과 2000년대 초 많은 인기와 호황을 누리던 쌈지였지만, 2000년 중반 들어 실적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와 쌈지길 같은 부동산 투자로 2003년 적자를 보게 되죠. 그러나 이후로도 적자가 계속된 이유는 쌈지의 경영 방식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디어그램 브랜드 / 당근마켓

쌈지의 힘은 문화콘텐츠에서 나왔으며 학생들에게서 나왔죠. 그러나 패션 상품에서 학생들은 전환이 빠릅니다. 때문에 지속적인 브랜드 개발이 필요하죠. 그러나 2000년대부터 쌈지는 브랜드 확장과 다각화에 집중해 기존 사업과 관계없는 분야로 진출해나갔습니다. 100억원 가까이 투자하고도 수익을 내지 못한 프랑스 디자인 스튜디오 '마틴싯봉'은 하나의 예일뿐이었습니다.


영아의 봄날 - 티스토리

쌈지, 딸기 등 쌈지가 있도록 해준 패션 브랜드에 대한 외면은 2007년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2007년 쌈지는 여전히 기존 브랜드에 집중하고 개발하기보다 새로운 사업을 탐색했죠. 그렇게 영화사업에 진출한 쌈지는 2개의 영화를 제작하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쌈지의 핵심이었던 디자인실의 핵심 인력도 흩어졌죠.

 

매일경제

기업의 사회 공헌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그는 지속된 적자로 회사를 매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법률자문 회사로부터 최대주주인 양진수, 양철수(가명) 형제를 소개받아 매각하게 되죠. 그러나 이는 사기였습니다. 사채업자가 회사를 점거하고 임금 체불이 이어졌습니다.


4. 현황 


한살림고양파주 - 한살림연합

천호균 대표는 2009년 쌈지에서 퇴진했고 쌈지는 2010년에 최종부도, 상장폐지가 확정되었죠. 기존의 쌈지는 부도났지만, 그는 부도전 쌈지의 문화 사업부 '어린농부'를 독립시켜 '쌈지농부'를 설립했습니다. 지금도 천호균 일가는 쌈지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쌈지농부는 아들이 물려받았고 유아놀이교육 전문 업체 '딸기봐봐'는 그의 딸이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김현준 브런치 / 중앙일보

토종 패션 브랜드 쌈지는 결국 부도를 면치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주주들이 투자금을 잃었죠. 그리고 쌈지의 각종 브랜드 사업권은 다양한 회사에 넘어간 상태입니다. 때문에 쌈지의 이름으로 팔리는 물건이 같은 회사의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죠. 그러니 어디선가 파는 쌈지의 물건이 정말 그곳의 제품인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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