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성공한 줄 알았지만...백종원도 포기하고 말았던 외식 사업아이템

호프집으로 첫 사업 시작
IMF로 얻은 빚만 17억
원조 쌈밥집으로 외식업계에서 성공


TV를 틀면 웬만한 연예인보다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백종원이죠. 그는 외식업계의 큰 손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운영 중인 더본코리아의 대표이사인데요. 빽다방, 홍콩반점, 한신포차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 한 유명 외식업이 전부 그의 작품입니다. 


러나 그런 그도 처음부터 성공길만을 걸어왔던 것은 아닙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죠. 백종원은 '그때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말할 만큼 시행착오를 겪어왔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 역시 당시 어려움을 발판으로 시작했습니다.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죠. 과연 지금의 백종원이 있기까지 어떤 일들을 겪어왔을까요?


타고난 장사꾼, 스무 살 때 호프집 인수

백종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어릴 적부터 장사꾼 기질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음료수 병이 돈이 된다는 생각에 병을 모아 고물상에 팔았다고 하죠.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이 장사꾼의 기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합니다.

스무 살 당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일했던 호프집을 인수합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주인에게 배달이나 포장 판매를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상권을 파악하고,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없다는 것을 분석하여 새로운 사업전략을 내세운 것이죠.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치킨을 튀기는 장비도 더 많이 사들였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이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했고, 그 가게를 백종원이 하기를 제안받은 것이죠. 그 당시 백종원은 가게를 인수할 돈이 없었지만, 주인이 백종원의 자질을 알아보고 적은 돈으로 가게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호프집을 시작으로 3년간 가게 3개를 운영하며 15억 원을 벌어들였죠.



인테리어 사업 시작 후 빚만 17억, 자살시도까지



하지만 정작 백종원의 꿈은 무역업자였다고 합니다. 요식업을 돈벌이 삼아 소소하게 운영하긴 했지만, 주택 사업을 시작했죠. 90년대 당시 건설 시장이 확장되고 있었기 때문에 목조주택과 인테리어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환위기가 닥쳤죠. 97년 말부터 자재의 단가가 폭등하여 적자로 돌아섰고 빚이 무려 17억까지 불어났다고 합니다.


참담한 상황에 굴복한 백종원은 살 의지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차피 죽을 거면 맛집이 널려있는 홍콩에서 죽자고 생각하고는, 홍콩으로 향했죠.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려는 심산으로 옥상을 찾아 헤맸지만 사업 아이템에 눈에 밟히기 시작합니다.

백종원은 사업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죽을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희망을 가진 그는 한국에 돌아가서 재기에 도전하기로 하죠. 채권자들을 모아놓고 포부 있게 빚을 갚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채권자들이 기회를 주자 사업에 다시 뛰어들었죠.


◎ 지금의 백종원 있게 한 원조 쌈밥집

재기를 노리던 백종원은 쌈밥집부터 다시 운영을 시작합니다. 주택 사업을 할 때 부동산에 들러 얻은 정보로 쌈밥집을 인수했었죠. 장난스럽게 나온 식당 없냐고 물었던 그는 사실 식당을 인수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쌈밥집의 주인이 단돈 50만 원에 가게를 넘기면서 원조 쌈밥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쌈밥집 또한 망해가고 있었지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쌈밥집으로 재원을 마련한 그는 1998년 한신포차를 출범시킵니다. 그렇게 본가, 새마을식당, 빽다방을 차례로 선보이며 큰 성공을 일궈냈죠. 현재는 전국에 1천여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렇게 17억이란 큰 빚을 모두 청산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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