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사자에게 성조기 대신 UN 깃발을 사용하는 이유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남북은 분단되어 아픈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한반도에도 평화의 빛이 띠기 시작했습니다. 7월에는 한국 전쟁 휴전 협정 65주년을 기념하여 북한에 있던 55구의 미군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되기도 하였죠. 고인의 유해는 작은 상자에 넣어졌고 각 상자는 UN 국기로 감싸여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왜 성조기가 아닌 UN기가 사용된 것일까요?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지나 남한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략 직후, UN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일방적인 침략에 만장일치로 반대의견을 표출하였는데요. 역사적으로 미국은 혼자서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UN과 함께 움직였죠.


▼한국전쟁 당시에도 대부분의 UN 서명국이 큰 대의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미국은 302,483명, 영국은 14,198명의 군인들을 파견하였고 캐나다 6,146명, 호주 2,142명, 에티오피아 1,271명 등 수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알려지지 않은 수의 군대의 규모는 총 602,902명으로 그 규모 또한 굉장히 큰 편이었습니다.


▼UN군은 북한과 러시아, 중국에 맞서 일제히 힘을 모아 싸웠습니다. 1950년 8월 말, 북한은 남한을 벼랑 끝으로 밀어냈고 부산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다행히도 UN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10월 말엔 UN군이 북한 수도인 평양을 지나 중국 국경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중국의 증원군이 도착하면서 이 전선은 38선까지 후퇴되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는 잿더미로 변했고 남북한과 중공군, 유엔군을 포함해 150만 명이 넘는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사망자 유해의 첫 번째 본국 송환은 전쟁직후인 1954년 9월 1일에 시작되었는데 이를 글로리 작전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양측은 10월 30일까지 유해를 수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만 해도 5,300명이 넘는 병력이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였으며 한국과 UN동맹국은 훨씬 더 많은 수의 실종자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유해가 발견되었으며 각국으로의 송환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유골의 표지와 분류에 있어 상당히 정확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원산에서 옮겨진 55구의 유골의 신분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어느 부대 소속이었는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까지 북한에서 실종된 UN군들의 신분을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기록 중 하나가 조니 존슨 일병이 쓴 비밀 일기입니다. 이 일지에는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있던 UN군의 명단이 적혀있었으며 총 496명의 미군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일지는 신분 증명서의 기초가 되었지만 미국인 실종자 중 단지 1/14만의 신분만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원이 밝혀질 때까지 UN기를 사용하여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자 한 것입니다. 유골 송치 때 성조기나 다른 국기 대신 UN기가 사용된 이유이죠. 현재 그들은 어떤 나라 출신인지에 상관없이 UN기 아래에서 뜻이 기려지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름 없는 수많은 사망자들이 한반도에 남아있습니다. 하루 빨리 이들이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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