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놀라운 하루일과를 살펴보니

희대의 사랑꾼, 못말리는 육식파, 하루라도 책 없이는 못사는 책벌레. 여러분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훈민정음 창제, 해시계·측우기 발명 등 모두가 아는 세종대왕의 업적 이외에 그가 살아온 사생활에 대해 논하자면 뜻밖의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돌려 말하자면 희대의 바람꾼, 좋게 말하자면 희대의 사랑꾼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세종의 공식적인 부인은 6명입니다. 중전과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만 2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그가 임신한 아내를 위해 경복궁에 분만실을 선물한 일화는 당시 여심을 사로잡고도 남을 만큼 로맨틱합니다. 이런 바쁜 사생활 속에서도 세종은 매일 5시간을 공부하고 10시간을 나랏일에 열정을 쏟을만큼 부지런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따라붙는 또 다른 키워드 바로 성실함인데요.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바쁘게 살았던 세종대왕의 입이 떡 벌어질만큼 놀라운 그의 하루일과를 소개합니다.


▼새벽 5시 '기상'

세종은 아침은 태양보다 빠릅니다. 그는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5시 30분부터 본격적인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요. 그는 하루종일 공부와 사람들과의 소통을 매끼마다 챙기며 중요 일과로 삼았습니다. 크게 보면 그는 5시간 취침 뒤 5시간은 공부에, 10시간은 업무보는일에 자신의 온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새벽 6시 '조회 및 아침 경연'

어릴적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해 아버지인 태종의 걱정을 사기도 했던 세종은 신하들과 모여 책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주로 경연의 대상이 된 책은 논어, 맹자, 대학, 춘추, 사기, 성리대전 등 다양한 유형의 전문서적들이었는데요. 이 시간을 통해 세종과 신하들은 학문의 지식을 넓히고 폭넓게 사고하며 끊임없는 발전의 시간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오전 9시 '윤대'

오전 9시에는 사정전에서 윤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업무 보고' 같은 개념인데요. 각 관청의 실무자가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파격적인 시간을 나눴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세종은 실무자에게 직접 업무에 대해 조언도 하고 현재 진행되는 일을 직접 확인하는 철저함을 드러냈는데요. 덕분에 세종은 현장의 소리를 어떤 오해나 굴절 없이 생생하게 전해 들음으로써 투명한 정치를 실현해가고자 했습니다.


▼오후 12시 '국가 회의'

국가 회의 시간에는 세종대왕이 직접 회의의 주제를 발췌해 당시 국가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종은 '가뭄 피해에 대해', '과거 제도 운영 공정성에 대해', '형범 남용 불가에 대해' 등 현실적인 주제를 놓고 신하들과 토론해 정책 수립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주제들은 윤대의 시간을 통해 직접 관리자들에게 현실적인 고민들을 들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죠.


▼오후 1시 '공부 및 독서'

세종은 하루 일과표 곳곳에 공부 및 독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곧 훈민정음과 과학 발명품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는데요. 세종은 수많은 역대 임금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독서 시간을 자랑합니다. 세종이 독서를 병적으로 좋아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세종실록'에 기록돼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데요. 세종은 병에 걸려 몸져 누웠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도, 음식을 챙겨먹지도 못할 정도였는데요.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태종은 하다 못해 환관들을 시켜 모든 책을 압수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단 한 권의 책만 남겨두었다고 하는데요. 세종은 이 책을 무려 100번 이상 돌려볼만큼 무서운 집착을 보였다고 합니다.


▼오후 3시 '상소 검토'

소통의 왕이었던 세종은 상소를 검토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상소는 임금에게 올리는 조선시대 중요한 언론으로 일컬어지는데요. 특히 성균관 유생이 올리는 상소에는 국왕이 직접 답변해야 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세종은 다양한 직급의 관료들에게 필요한 의견들을 수렴했고 이는 곧 국민들을 위한 정치 제도로 실현되었습니다.


▼오후 5시 '숙직 관리 확인'

지독한 일벌레 세종 밑에 있던 신하들은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특히 우수한 학자들이 모여있는 집현전의 경우 밤늦게까지 세종이 직접 순시하며 일을 점검했다고 하는데요. 훈민정음 창제 무렵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상상을 초월할만큼의 업무량을 소화하기에 이릅니다. 세종대왕의 집현전 사랑은 한 일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당시 집현전의 한 학자는 궁금한 것을 못참아 하는 세종의 명을 받아 몇 천리나 떨어진 중국 명나라를 무려 13차례나 출장을 다녀왔다고 전해집니다.


▼오후 10시 '구언'

세종은 정치인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것 외에도 백성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기막힌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로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었다고 하는데요. 백성들은 구언을 통해 관리들에게 당한 농간이나 부당하게 빼앗긴 세금 등을 전하며 구원받고자 했습니다. 세종 또한 백성으로부터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의견을 전해들음으로써 백성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종의 하루일과를 보면 그가 분명한 워커홀릭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세종이 왜 지금까지 존경받는 위인으로 남아있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특히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뛰어난 애민정신으로 현시대와 맞물려 그의 업적이 재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획기적인 국민 투표 도입, 왕가 소유의 토지 개방, 최초의 출산 휴가제 도입, 장애인 지원 정책 등의 당시 파격적인 정치 스타일은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죠. "내가 꿈꾸는 태평성대란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 세종이 끊임없이 되뇌었던 애민정신이 유독 그리워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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