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9월, 영국의 마크 I 전차가 세계 최초로 전장에 투입된 탱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후 100여 년간 각 군의 지휘 아래 전차들은 가장 치명적이면서 다용도의 무기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탱크라고 하면 일단 무시무시한 파워와 대포 그리고 장갑기능이 떠오르죠? 19세기 이전에는 기동력이 좋은 기병대가 서로 맞붙었는데 20세기에 와서는 힘과 스피드를 모두 갖춘 탱크들의 전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수 많은 탱크들이 상대방의 탱크들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요? 다음은 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탱크들의 전쟁 톱 10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0. 깜브레 전투
1917년 11월 20일 ~ 12월 8일
세계 1차대전 당시 1917년 겨울, 영국군과 독일군이 맞선 ‘깜브레 전투’는 흔히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첫 전차 전쟁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첫 전차 전쟁은 같은 해 초, 프랑스군이 먼저 탱크를 전장에서 먼저 이용했죠. 깜브레 전투는 영국군의 전차 연합작전으로 독일의 힌든부르크 전선을 공격하면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선방 때문에 전략적으로 실패했죠. 이 깜브레 전투에서 두 나라는 476대의 전차를 투입했고 모두 45,000명이 전사했습니다.
9.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1942년 10월 23일 ~ 11월 11일
연합군의 전차 1,000대와 추축군 547대가 격돌했던 세계 2차대전의 두 번째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는 추축군이 숫자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패하면서 독일이 첫 번째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획득했던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 영토를 잃게 됩니다. 이 전투의 가장 큰 공신은 역시 연합군이 미국으로부터 공수 받은 셔먼 탱크였죠.
8. 라세이니 전투
1941년 7월 23일 ~ 7월 27일
세계 2차대전, 오늘날의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라세이니 전투에는 소련 전차 749대와 독일 전차 245대가 혈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소련 탱크가 기술적으로 봤을 때 훨씬 우세했고 숫자도 3배 가까이 되었지만, 전투기들의 지원을 받지도 않았던 독일 탱크 부대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죠. 이 전투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은 독일군은 전차 전투 전략과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줬습니다.
7. 눈물의 계곡 전투
1973년 10월 6일 ~ 10월 9일
피와 눈물이 강물처럼 흘렀다는 이 욤 키푸르 전쟁 (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군 vs. 이집트와 시리아를 앞세운 아랍연합군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유대인들의 명절인 욤 키푸르 날에 시리아가 1,260대의 탱크를 몰고 이스라엘을 불시에 침략하면서 시작되었죠. 당시 이스라엘은 단 100대의 탱크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전차 수적 열세에도 이스라엘군은 공중 지원과 수 많은 포 사격으로 아랍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6. 브로디 전투
1941년 6월 23일 ~ 6월 30일
‘쿠르스크 전투’가 2년뒤 일어날 때까지 세계2차대전의 가장 큰 탱크들의 전투였던 ‘브로디 전투’는 추축군 전차 800대와 소련군 전차 2,500대가 맞붙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수적 열세에 불구하고 독일군이 승리를 가져갔는데, 독일 공군 ‘루프트와프’의 공이 가장 컸죠.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 소련의 T-34 탱크 201대를 파괴시키고 말았습니다.
5. 아뉘 전투
1940년 5월 12일 ~ 5월 14일
벨기에에서 프랑스군과 나찌 독일군이 붙었던 아뉘 전투는 독일이 674대의 전차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침략했고,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함께 600대의 전차 및 장갑차로 방어를 시도했습니다. 아뉘 전투는 누가 크게 이겼다고 볼 수 없었지만, 결국 독일이 연합군의 길목 하나를 가로채게 되었고 프랑스군은 심한 타격을 입으면서 급하게 전차 부대를 보강해야 했죠.
4. 굿우드 작전
1944년 7월 18일 ~ 7월 20일
세계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일환으로 펼쳐진 굿우드 작전 (Operation Goodwood)은 영국 역사상 가장 큰 탱크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무려 1,100대의 영국 전차가 프랑스의 작은 서북부 도시 캉에 투입되었죠. 이 영국 전차부대에 맞섰던 독일군은 377대의 전차를 내보냈는데, 결국 상대가 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3. 73 이스팅 전투
1991년 2월 26일 ~ 2월 27일
이라크전의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미군의 제 2 기갑기병연대와 영국군은 이라크의 제 18 기계화보병여단과 제 37기갑여단을 전멸시켰습니다. 이 작전의 메인이었던 73 이스팅 전투에서 이라크 군은 160대의 탱크를 잃게 되었죠.
2. 차윈다 전투
1965년 9월 17일 ~ 9월 22일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일환이었던 차윈다 전투는 비교적 비슷한 전투력을 보였던 전차 225대의 인도군과 282대의 파키스탄군이 맞붙게 되었습니다. 원래 인도군은 파키스탄 물자 수송을 끊기 위해 기차 선로를 확보하려고 탱크 부대를 보냈으나 동맹군들의 지원을 받았던 파키스탄 전차 부대가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자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도는 파키스탄 영토 520제곱킬로미터를 차지하게 되었죠.
1. 쿠르스크 전투
1943년 7월 12일
군 역사상 가장 큰 전차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쿠르스크 전투는 전차 850대의 소련군과 500대의 독일군이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전차 숫자로만 보면 열세였던 독일군은 이 지역에 총 군세력의 1/3인 90만명의 병력과 10,000문의 대포, 2,000대의 항공기를 모아 왔죠. 하지만 7월 12일, 18시간이 넘게 진행 된 전차전에서 독일군은 350대의 탱크와 만명이 넘는 병력을 잃고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쿠르스크 전투를 통틀어서 독일군은 무려 5만명의 병력이 전사, 부상 또는 실종으로 잃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