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10만 중공군의 포위뚫고 살아남은 미 여군 대령


오늘은 바로 현대사의 비극, 6.25 한국전쟁이 67주년을 맞이하는 그 날입니다. 지금까지 전장에서 쓰러져간 호국영령들의 유가족은 모두 36,000여명이 넘는다고 하죠. 그들의 시간은 아직도 1950년에 멈춰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우리를 도와줬던 미군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난 1994년, 미 국방부는 전장에서만 33,652명의 미군이 전사했고,또 3,262명이 질병과 전투 외 이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미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루비 브래들리 대령이 한국에 없었더라면 미군 전사자의 수가 훨씬 늘었을 것이라고 많은 군사 전문가들과 역사학자들이 믿고 있습니다. 다음은 6.25전쟁 때 10만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살아남은 미 여군 대령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태생의 루비 브래들리(Ruby Bradley)는 1934년, 27살의 나이로 미 육군의 간호부대에 수술전담 간호사로 입대했습니다. 


▼그녀는 진주만 공격 직후 필리핀 미군 기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도중 일본군에 전쟁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끝날 때 까지 포로생황을 이어갔죠. 브래들리는 포로생활 중에서도 함께 포로로 끌려온 미군들의 건강을 돌봤습니다. 특히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인체실험을 견뎌낸 미군들에게 직접 맨손으로 수술을 진행하기도 했죠.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래들리는 미국 본토로 돌아와서 간호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졸업식과 동시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녀는 소령 신분으로 제171 후송병원 소속이 되어 한반도로 향했습니다.

▼1950년 11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반격해왔을 때 하나의 레전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 미군과 국군을 치료중이던 브래들리는 순식간에 중공군 10만 대군한테 에워싸였습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은 채 부상자들을 모두 비행기와 헬기에 실어 보낸 그녀는 자신의 구급차가 포탄에 터지는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으로, 그것도 극적으로 몸을 빼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브래들리는 이 공로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훈장과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게 되었죠.


▼1951년, 브래들리는 미 제8군사령부의 수간호사로 임명되어 한국에서 활동중인 미 육군 간호사 500여명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6.25 한국전쟁 동안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무려 230회의 수술을 직접 진행했고 심지어 전문분야도 아닌데 우리나라 임산부들을 도와 13명의 아기들을 출산하는데 기여를 했다고 하죠.


▼1958년, 대령으로 최종 진급한 브래들리는 1963년에 미 육군에서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미군 전문가들과 역사학자들은 루비 브래들리 대령을 미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군으로 내세우고 있죠.


▼우리나라의 6.25사변종군기장을 포함해 지금까지 무려 23개의 훈장을 받은 브래들리 대령은 지난 2002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그녀의 시신은 알링턴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 기념관에 높이 이름이 새겨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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