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우주 프로그램이 지금봐도 믿기지 않는 이유

우리는 구소련이 위성과 사람을 모두 우주로 쏘아 올린 첫 번째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은 아주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상으로부터 숨겨왔죠. 실제 구소련의 헛점 많은 우주 프로그램으로 동물은 물론 우주비행사까지 수많은 희생을 야기했습니다. 여기 구소련의 놀랍게도 대담했던 우주프로그램에 대한 5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5.  테스트용으로 우주에 보내진 강아지

▼지난 1951년부터 15년간 구소련은 20마리가 넘는 강아지를 우주로 쏘아올렸습니다. 인간이 우주선에 오르기 전 수많은 동물들이 먼저 테스트에 나섰는데요. 당시 미국은 훈련된 원숭이를 우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의 실험은 미국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죠. 구소련은 잔인하게도 보내진 동물들을 산 채로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난 1957년 11월, 전 세계는 구소련이 세계 최초 우주선인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1호가 발사된 뒤 한 달만에 2호가 발사됐는데요. 그 안에는 놀랍게도 강아지가 타고 있었습니다. '라이카'라는 이 강아지는 우주에 보내진 첫 생명체였죠. 라이카가 우주로 향하는 여정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적어도 구소련이 그 강아지가 안전하게 살아돌아올 방법을 전혀 생각해놓지 못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구소련은 당시 라이카가 우주선이 발사된 지 일주일 뒤에 독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구소련은 라이카를 우표에 새김으로써 그의 희생을 기리기도 했죠.


하지만 지난 2002년 이를 뒤집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라이카는 존엄사가 아닌 끔찍한 방법으로 우주선이 발사된 지 몇 시간만에 생을 마감했다고 밝혀졌는데요. 스푸트니크2는 급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로, 달랑 4주만에 우주선을 완성시켰습니다. 때문에 도중에 열 전연 시스템이 고장난 건 당연한 결과였죠. 불쌍한 라이카는 죽을 당시 평소보다 4배나 빨리 심장이 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화씨 104도의 캐빈 안에서 발견됐죠. 라이카의 사인은 스트레스와 열로 인한 심장박동 정지였습니다. 우주선이 발사된 지 고작 5~7시간만의 일이었죠. 

아마 우주를 다녀온 강아지들이 다시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했더라도, 그들은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날씨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구소련은 정해진 장소로 우주선을 착륙 시키는 기술이 없었는데요. 때문에 강아지들이 탑승한 우주선에는 60시간 후 파괴되는 타이머가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타이머는 지난 1960년 12월에 실제 사용됐는데요. 우주선에 타고 있던 두 강아지는 영하 45도의 러시아 한가운데 착륙했습니다. 하지만 구조자들은 혹독한 겨울 날씨에 강아지들이 얼어 죽기 전 미처 도착하지 못했죠. 이후 점차 많은 강아지들이 우주에 안전하게 착륙하게 됐고, 구소련은 우주가 인간들에게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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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확히 알 수 없는 우주비행사의 죽음

▼지난 1961년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이 우주에서 안전하게 돌아오며, 끔찍했던 강아지 학살은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유리의 성공적인 비행 전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저 우주를 질주하고 있는 몇 몇의 우주비행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소련이 지속적으로 우주 프로그램에 공을 들였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그 프로그램들은 하나의 '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든 실수를 덮고, 증거를 없애는 일에만 골두해있었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를 누구도 증명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59년 독일의 과학자 헤르만 오베르트(Hermann Oberth)는 2년 사이에 적어도 네 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그는 소련이 로켓을 유인 우주선으로 변형시켰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는 NASA와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체코의 한 고위공무원은 소련의 비공식적인 우주선 발사 과정에서 몇 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다는 정보를 누설하면 그의 이야기를 뒷받침했죠. 


두 이탈리아 형제의 이야기는 그의 증언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형제는 열악한 청취 장비를 통해 전해지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정확히는 모스부호로 전해지는 SOS 신호였습니다.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우주비행사의 죽어가는 숨소리와 희미한 심장박동 또한 전해졌죠. 장비에서는 한 러시아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는 비명이 시작되면서 끝이 나죠.


"전송이 시작됩니다. 41. 네, 너무 더워요. 뜨거워요. 다 너무 뜨거워요. 불꽃이 보여요! 불꽃이 보인다구요! 불꽃이요! 32… 32. 제가 충돌하게 될까요? , 네 너무 뜨거워요. 듣고 있어요? 너무 뜨겁다구요. 재진입 할거에요. 뜨거워요!"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커플도 있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요. 왜 대답을 안하시죠? 속도가 점점 느려집니다세상은 우리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하겠죠..."


▼소련은 송신된 우주비행사의 말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형제가 녹음한 기록을 들어보면 사진에서 지워진 미스터리한 우주비행사들이 실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게 하죠. 또 실제 이들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삭제됐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삭제된 우주비행사들은 실제 발사대의 화제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죠.


 3.  대책없는 보스호드(Voskhod) 프로그램

▼1964년까지 구소련은 어떻게 해서든 가장 먼저 달착륙에 성공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더 큰 우주선이 필요했죠. 그렇게 고안된 우주선이 '보스호드'였습니다. 보스호드는 세계 최초의 3인승 인공위성으로 기록되어 있죠. 우주선은 안전하게 발사됐고,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i Leonov)는 우주유영(우주선 밖에서 행동하는 것)을 한 첫 번째 인류로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보스호드 프로그램에서 문제점이 발생했죠.


▼갑자기 그의 우주복은 진공 때문에 심하게 부풀어올랐습니다. 당연히 우주복을 고안한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었죠. 풍선처럼 부푼 우주복 때문에 그는 우주선의 문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는 강제로 우주복에서 공기를 빼내야 했고, 그러는 와중에 그는 내내 열사병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 과정동안 우주유영은 20분이나 계속 됐죠. 땀은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무사히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었죠.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시련이 닥친지 14초만에 공포에 질려 죽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소련의 우주 프로그램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지 감이 오시나요? 이건 아주 일부분일 뿐입니다. 보스호드2호는 이전 우주선인 1호의 수정된 버전이었습니다. 이 우주선의 탑승 인원은 단 한 명이었죠. 하지만 소련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두 명을 태우고 비행을 감행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우주선의 설계는 크루들이 안내사항을 읽기 위해선 머리를 90도로 숙여야할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캡슐에는 재진입 긴급상황 시 탈출할 수 있는 전략이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았죠. 그나마 한 가지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자동 착륙에 실패했을 시 실행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우주선은 당연히 자동 착륙에 실패했고, 시스템은 한 명의 우주비행사를 좌석 아래에 눕히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다른 한 명이 팔로 잡고 있어야 했죠. 상상할 수 있나요? 방금 인류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우주비행사가, 모든 어려움을 딛고 우주선에 돌아왔는데 지구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내 동료를 잡고 있어야 하다니요.


하지만 결과는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알아서 착륙해야 했던 두 크루는 고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소요됐고, 정확한 착륙을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들을 태운 우주선은 헬리콥터조차 접근할 수 없는 우거진 우랄산맥의 한 지점에 착륙했죠. 구조대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타나기 전, 실제 이들은 이틀 동안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베고 늑대들의 공격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2.  문제점을 알고도 발사한 달 탐측선

▼1967년까지 달을 향한 탐사 성과는 나라마다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은 그 첫 주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죠. 그리고 실제 그 계획은 쉬지 않고 진행됐습니다. 우주비행사는 우주선 밖을 나가 유영을 해야만 했고, 달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는 달 표면의 암석을 한 가득 가져와야만 했죠. 무려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말입니다.


▼구소련은 프로그램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궤도의 정확한 지점에 도달하는지, 어떻게 달 표면을 걸을 수 있는 지 등의 연구가 계속됐죠. 이 모든 일은 18개월 안에 진행돼야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의 우주선은 매우 낙후했습니다. 우주선의 디자인은 7살짜리 아이의 수학 시간 낙서에서 착안한 것이나 다름 없었죠. 그리고 비행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요. 우주비행사 유리가 소유즈1(Soyuz)을 살펴보았을 때, 그 캡슐에는 무려 203개의 구조적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때문에 그는 우주선의 발사를 늦추자고 제안했죠. 하지만 정부에서는 공산주의 혁명 50주년을 맞아 그들이 첫 우주선 도킹을 이뤄내고 싶었기에 "아니, 할 수 있어" 라는 대답만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비행을 나선 건 유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절친 블라디미르 코마로프(Vladimir Komarov)였죠. 블라디미르는 자살과도 같은 그 임무를 쉽게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플랜B는 바로 유리였기 때문이죠. 그가 안하면 유리가 비행을 해야만 했고, 그는 절친이 죽음으로 내몰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유리 또한 같은 생각이었죠. 때문에 유리는 블라디미르의 비행 날 함께 우주선에 오르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블라디미르 혼자 비행을 떠나게 됐죠.


소유즈는 발사되자마자 바로 문제점들이 나타났습니다. 태양광판은 작동하지 않았고, 동력 시스템이 멈췄으며 방향 탐지기는 얼어버렸죠. 결국 그는 우주선을 조종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자동 안정화 장치도 고장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수동 안정화 장치도 일부만 작동했죠. 소유즈1호는 패들 없이 우주에 올려보내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지구를 13바퀴 돌고 나서야 그 미션은 중단되었고 그제서야 블라디미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낙하산이 재진입 과정에서 엉켜버려 소유즈선의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전부 지구와 연결되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죠. 블라디미르와 비행 지휘관이 울부짖고 욕한 것을 미국 과학자들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통화를 하고 있었죠. 아내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냐고 블라디미르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소유즈 1호의 이야기입니다. 이후 소유즈 5호의 착륙 또한 만만치않았죠. 착륙하면서 비행사는 치아가 부러지는 사고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알아서 피난처를 찾아야 했죠. 그는 구조되기 전 까지 한 소작농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소유즈 6, 7, 8호는 모두 도킹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죠. 아폴로가 이미 달착륙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1.  금성과 화성으로의 탐사 계획

▼이쯤되면 우주 레이스의 승자는 결정났지만, 소련은 다른 한 방을 날리고 싶어했습니다. 바로 금성과 화성으로의 탐사 프로그램이었죠. 계획은 일단,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화성에서 3년 동안 살아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사들이 화성에서 3년간 지낼 수 있도록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꽤나 야망에 찬 설계에 들어갔죠. 예를 들어, '온실에서 수중재배법으로 비행사들의 식량을 20%에서 50%로 끌어 올려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기술의 한계에 막힌 터무니없는 계획들은 제외됐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계획 또한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행사가 화성의 궤도에 진입한 뒤 지구로 돌아와, 다시 지구를 지나쳐 금성까지 들렸다 지구로 돌아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여행에 걸리는 시간은 총 4년이었죠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6명의 크루가 화성에 실제로 착륙해 그곳에서 1년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화성을 개척하면서요. 하지만 계획들은 매번 산산조각나 돌아왔죠.


▼계획들의 결점은 단순히 '미국인들의 방법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서 야기되었습니다. NASA 같이 액체 산소와 액체 수소를 쓰는 대신 소련은 벤젠과 케로젠을 섞어 쓰는 방법을 택했죠. 그 혼합물은 가솔린보다 불에 잘 붙어 폭발의 위험이 높았습니다.


▼불행히도 소련은 그들의 온 노력을 우주정거장에 대신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불행한 이유는 처음 그 우주정거장을 방문했던 세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의 대기에 진입하기 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프로젝트의 대안은 핵무기를 추진하는 것이었으니 우리는 어쩌면 우주정거장 프로젝트가 소련의 주의를 끌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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