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든 도로를 지배했던 이 기업이 몰락한 결정적 이유

대한민국 도로를 싹 다 지배했던 

금호아시아나가 몰락한 결정적 이유

"아시아나 항공, 나의 모든 것이었다." 임직원에게 아시아나의 매각을 알리기 위해 박삼구 전 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대표이사 자진 사임, 채권단에 제출한 회사의 자구안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 항공을 매각하게 된 과정을 밝히면서, 박 전 회장은 설립부터 IMF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생해온 구성원들 모두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의 뜻을 전했는데요. 


연합뉴스

해당 글에서 박 전 회장이 직접 밝혔듯, 2004년 그룹 이름을 '금호'에서 '금호 아시아나'로 바꿀 만큼 아시아나는 그룹을 대표하는 브랜드였습니다. 이런 아시아나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금호 아시아나 그룹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삼구 회장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시아나를 왜 끝내 지키지 못한 걸까요? 


머니투데이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기업


금호 아시아나 그룹의 창립자는 박삼구 전 회장의 아버지인 고 박인천 회장입니다. 1946년 택시 운수업으로 시작한 사업은 버스 운송업(광주여객 자동차, 현 금호 고속)으로 사업의 범위를 확대했는데요. 1971년 호남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부터 사세도 크게 확장되었죠. 박인천 회장이 별세한 후, 금호 그룹은 조금 독특한 후계 경영구도를 형성합니다. 한 명이 독점적으로 그룹 경영을 맡는 대신, '형제 공동 경영 합의서'를 작성하고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했죠. 이에 따라 장남 박성용 회장이 2대, 차남 박정구 회장이 3대 회장직을 맡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이 탄생한 것은 2대 박성용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던 1988년의 일입니다. 


헤럴드 경제

2002년 2대 박정구 회장이 세상을 뜨면서, 경영권은 3남 박삼구 회장의 손으로 넘어오는데요. 지금까지 무리 없이 잘 지켜졌던 '형제 공동 경영 합의서'에 이때부터 변경이 가해집니다. 박삼구 회장이 가장 먼저 손 본 '65세까지, 최장 10년 동안만 회장직을 유지한다'는 조항부터 시작해, 합의서는 여러 차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다음 순번이었던 박찬구 현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박삼구 전 회장의 갈등이 깊어지죠. 


IMF 때부터 시작된 적자 행렬


2017년까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비행기 표를 끊을 때가 아니면 '아시아나'라는 기업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별로 없을 겁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이끄는 아시아나의 경영 방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기내식 파동과 갑질 경영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부터 였을 텐데요. 


하지만 아시아나의 경영상 문제들은 훨씬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금호 그룹의 첫 번째 위기는 IMF 때 찾아왔으니까요. 당시에도  그룹의 매출을 주도하고 있던 아시아나 항공의 매출이 경제 위기를 맞아 급락하면서, 그룹은 매년 천억 원 이상의 순적자를 내며  휘청대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일보 / 비즈니스 워치

박삼구 회장은 2002년 취임 후 적자 메우기에 집중합니다. 금호산업의 타이어 사업부를 '금호타이어'로 분사시킨 뒤 톈진에 위치한 공장을 매각하고, 지분의 50%도 군인공제회에 팔았죠. 아시아나 항공도 공항서비스를 매각하면서 그룹의 적자 회복에 힘을 보탭니다. 


무리한 인수합병, 그리고 경제 위기

위클리 오늘 / CNB 저널

어느 정도 위기를 극복했다는 생각이 들자, 박삼구 전 회장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M&A에 나섭니다. 2006년에는 대우건설의 주식 72%를 6조 4,225억 원을 들여 매입하고, 2008년에는 대한통운까지 사들입니다. 


이투데이

문제는 인수자금의 대부분이 외부 차입으로 조달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데 쓰인 자금은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거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마련된 돈이었던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옵니다. 곤두박질친 대우건설의 주가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금호 아시아나 그룹이 인수 자금을 상환할 길도 요원해집니다. 결국 아시아나는 2009년 대우건설을, 2011년에는 대한통운을 다시 인수 시장에 내놓게 되죠. 


형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보수적이고 꼼꼼한 경영 스타일의 박찬구 회장은 '연이은 인수합병은 무리수'라는 비판적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를 계기로 형제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금호석유화학은 2015년부터 금호 아시아나 그룹과 법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길을 걷게 되었죠.  


쐐기를 박은 한정 의견


한국경제 / 시사위크

아시아나의 지난해 매출은 사실 사상 최대 수준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등의 신규 노선 안정화·유럽, 미주 등 장거리 노선의 수요 증대로 인해 전년대비 10% 증가한 6조 8506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죠. 하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784억 원으로 오히려 35% 이상 감소했습니다. 비핵심 자산 매각과 자회사 상장에도 불구하고, 부채비율은 여전히 500%를 웃돌았습니다. 


SBS CNBC 비즈플러스

아시아나의 유동성 위기는 지난 3월 22일,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 항공의 감사보고서에 '한정 의견'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는데요. 한정의견은 감사 범위가 부분적으로 제한된 경우, 감사 실시 결과 회계 준칙에 따르지 않은 몇 가지 사항이 있으나 그 사항이 재무제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 제시하는 의견입니다. 나흘 뒤 진행된 재감사를 통해 적정의견을 받아냈지만, 아시아나의 부실한 재무 상태와 회계 시스템의 미비점이 이미 부각된 이후였습니다. 


조선비즈

아시아나는 박삼구 전 회장의 퇴진, 박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담보 설정, 자회사 매각 등의 조건을 내걸며 채권단에 자금 수혈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합니다. 결국 아시아나 항공 매각을 포함한 수정 자구안을 제시하고 나서야, 금호 아시아나 그룹은 채권단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냅니다. 


그룹의 몸집을 불리기 위한 무리한 인수합병이, 그로부터 10년도 더 흐른 지금 결국 '금호 아시아나'에서 '아시아나'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었습니다. 에어부산, 에어 서울 등의 자회사가 한꺼번에 '통매각' 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는 민항사를 데려갈 기업이 과연 누가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죠. 재계 3위의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SK, 항공엔진 제조 계열사를 보유한 한화,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 등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번 인수전이 항공업계는 물론 재계 전체의 판도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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