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게 팔아도 대박 쳤던...국가대표 섬유 유연제가 몰락 중인 이유

한낮 온도가 매일 30도 가까이 오르며, 이제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덥고 습한 날에는 빨래를 제때 하지 않으면 옷이나 수건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기 쉬운데요. 그렇다고 세탁기를 자주 돌리다 보면 제아무리 폭신했던 옷감도 뻣뻣해지고 얇아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해결하고 기분 좋은 향까지 더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섬유 유연제를 즐겨 사용하죠. 


그런데 '섬유 유연제' 하면 바로 떠올랐던  피죤의 매출이 7~8년 전부터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국내 대표 섬유 유연제 브랜드였던 피죤의 추락,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빨래엔 피죤


1978년 첫 선을 보인 피죤은 국내 최초의 섬유 유연제 브랜드입니다. 아역시절의 김민정, 신애라나 박주미,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피죤 광고는 '우우우~ 베이베 베이베'로 시작해 '빨래엔 피죤~'이라는 멘트로 끝나는, 입에 착 붙는 CM송으로 친숙함을 더했죠. 선발주자의 이점인지, 광고 효과 덕분인지 소비자들은 브랜드명 ' 피죤'을 '섬유 유연제'라는 일반 명사를 대신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반창고를 찾을 때 "대일 밴드 어디 있어?"하고 묻는 것처럼 말이죠.  


한겨레 21

섬유 유연제=피죤이라는 인식이 생겼으니, 매출의 꾸준한 증가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세제만 사용해서 세탁기를 돌리던 사람이 섬유 유연제를 써보기로 했다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피죤을 선택할 확률이 높았죠. 샤프란 등 쟁쟁한 후발주자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피죤은 섬유 유연제 1위 왕좌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급격한 점유율, 매출 하락


그런데 2011년 즈음부터 시장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2010년에 44%를 기록한 피죤의 시장 점유율은 2011년 28.6%로 떨어지더니, 2012년에는 10%대로 무너졌죠.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20%대를 회복했지만, 2017년 피죤의 점유율은 다시 19%로 내려옵니다. 그사이 LG생활건강의 샤프란의 점유율은 2010년 23.5%에서 2011년 43.3%로 올랐고, 2017년에도 31.5%를 기록하며 피죤보다 크게 앞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카이 데일리

점유율이 이렇게 떨어졌는데 매출이 멀쩡할 리는 없겠죠. 매년 5% 이상 성장이 계속되어 2008년 1754억 5414만 원에 다다랐던 피죤의 매출은 2012년 약 916억으로 떨어지더니 2014년에는 697억 5761만여 원으로 하락했습니다. 


청부폭행에 횡령까지, 오너 일가의 갑질


KBS 뉴스

피죤 측에서는 "수입 판매하던 일본 피죤의 사업권을 유한 킴벌리가 가져가면서 매출 하락이 발생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피죤 이윤재 회장의 갑질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면, 사업권 이전이 매출 감소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회장은 직원들 앞에서 슬리퍼로 팀장의 얼굴을 수십 차례 가격하거나 편지봉투 뜯는 칼로 간부를 찌르고, 이은욱 전 사장을 겁주기 위해 조폭에게 폭행을 청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회장 일가의 횡령·배임 의혹도 추가되었죠.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은 이 회장이 직원 격려금이나 출장비용, 공사 비용 명목의 돈을 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도했는데요. 1월 한 달 동안 빼돌린 금액만 2억 6780만 원이라니, 그때까지 횡령했을 돈의 규모는 짐작조차 잘 가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삿돈, 주식과 관련해 이 회장 본인과 딸 이주연 대표이사, 아들 이정준 씨가 서로를 고소하거나 소송을 거는 등 콩가루 집안의 면모도 보여주었죠. 


MBC PD수첩

또한 <PD 수첩>, <한겨레 21> 등은 이윤재 회장이 "절대 전라도 출신을 뽑지 말라"며 지역 차별적 태도를 자주 보였을 뿐아니라, 기존 호남권 출신 직원들까지 쫓아내려고 시도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쉐리의 몰락, 피죤도 함께 몰락?


2011년부터 조금씩 불거져 나오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6년에 전담 수사팀이 꾸려지면서 전 국민에게 알려집니다. 해당 살균제를 제조한 옥시 레킷벤키저는 섬유 유연제 '쉐리'의 제조사이기도 한데요. 비난 여론과 함께 불매운동이 이어지자, 옥시에서는 쉐리와 파워크린 등 일부 제품을 단종하기에 이르렀죠. 


강력한 라이벌 중 하나가 몰락했으니, 이는 피죤이 다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화학 제품군 전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진 데다, 그간 나빠진 피죤의 이미지까지 더해 오히려 점유율이 하락했죠. 


JTBC

설상가상으로 2018년 3월에는 피죤의 탈취제에서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가 검출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피죤은 즉각 환불 조치를 취했지만, 한 번 떨어진 소비자의 신뢰를 되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지금까지 국민 섬유 유연제 피죤이 힘을 잃고 무너진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추락의 가장 큰 요인은 '오너 갑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라고 할 수 있겠죠. 남양유업의 매출이 급강하하고 미스터 피자가 상장폐지의 위기까지 내몰렸던 사례를 보더라도, 오너의 만행은 더 이상 단발성 이슈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피죤은 고농축과 향을 내세운 제품, 건조기나 에어워셔용 신제품 등을 선보이며 시장 재탈환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 같은 노력이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내고, 피죤을 다시 섬유 유연제 1등 브랜드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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